매슈 매카시 벤앤제리스 CEO, '정의' 앞세워 新행동주의 경영 개척

입력 2021-08-08 16:57   수정 2021-08-09 01:04


북극 알래스카 야생동물 보존구역의 석유 시추에 반대한다. 흑인 인권운동을 지지하기 위해 누구보다 먼저 성명을 발표한다. 사회운동단체가 한 행동이 아니다. 아이스크림 회사인 벤앤제리스 얘기다. 행동주의 경영의 상징이 된 벤앤제리스가 또다시 논쟁의 중심에 섰다. 이스라엘이 점령한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더 이상 아이스크림을 팔지 않겠다고 지난달 말 선언하면서다.

반유대주의 논쟁으로까지 번진 이사회 결정을 묵묵히 지원한 최고경영자(CEO)는 올해 취임 4년차를 맞은 매슈 매카시(52)다. 그는 “사회 정의를 지키는 기업은 논쟁에 익숙하다”며 “벤앤제리스에서 금지된 주제는 없다”고 했다. 금기를 만들지 않는 게 벤앤제리스의 기업 철학이라는 얘기다.
히피가 이끈 ‘행동주의 아이스크림’
‘우리는 인권과 존엄성을 높이고 소외된 지역사회를 지원한다. 아이스크림을 이용해 세상을 바꾼다.’ 벤앤제리스 홈페이지에 실린 소개글이다. ‘행동주의 아이스크림’은 이 회사를 설명하는 수식어다.

1951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동갑내기 친구 벤 코언과 제리 그린필드는 1978년 1만2000달러를 들여 아이스크림 가게를 차렸다. 버몬트주 벌링턴의 한 주유소 모퉁이를 개조한 작은 공간이었다. 아이스크림 기술조차 없어 5달러짜리 강의만 듣고 시작한 장사였다.

원칙은 하나였다. 버몬트에서 나오는 좋은 재료를 사용해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만든다는 것이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아이스크림 메뉴를 개발하며 유명해졌다. 보잘것없는 가게를 찾아준 손님에게 보답하기 위해 1년에 하루 ‘무료 증정의 날’을 만들었다. 이는 벤앤제리스가 버몬트 대표 명소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됐다.

코언과 그린필드는 뉴욕에서 히피로 생활하다 버몬트에 터를 잡았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용어조차 없던 1985년부터 사회책임 투자를 실천했다. 이익의 7.5%를 기부해 인종차별, 빈곤, 환경 문제 해결에 썼다. 공정무역과 상생은 빼놓지 않는 가치였다. 신제품을 출시할 땐 철학과 유머를 담았다. 사회적 목소리를 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군비 경쟁에 반대하기 위해 1987년 ‘피스팝스(Peace Pops)’ 아이스크림을 출시했다. 그해부터 매출의 1%는 평화 증진 기금으로 적립했다. 2005년에는 북극 보존을 위해 ‘베이크트 알래스카(Baked Alaska)’ 아이스크림을 내놨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된 2008년엔 ‘예스 위 캔(Yes, We Can)’ 구호를 본뜬 ‘예스 피칸(Yes, Pecan)’을 출시했다.

2000년 유니레버는 이 회사를 3억2600만달러에 인수했다. 하지만 조건이 붙었다. 본사를 버몬트에 그대로 두고 행동주의 철학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영에 대한 모든 변경 사항은 이사회가 결정한다. 이익의 7.5%를 기부하는 정신도 이어가야 한다. 유니레버 인수 뒤에도 벤앤제리스의 행동주의 경영이 유지되는 배경이다.
인권운동에 관심 많은 ‘유니레버맨’
2018년부터 벤앤제리스를 이끌고 있는 매카시는 1997년부터 유니레버 식품사업부에서 근무했다. 유니레버에서 그는 동물 복지 식품을 출시했다. 닭장에 갇힌 닭이 아니라 방목해 키운 닭이 낳은 달걀로 마요네즈를 만들었다. 유니레버의 첫 유기농 식품 브랜드인 그로잉루츠도 이끌었다. 벤앤제리스로 자리를 옮긴 그는 스스로를 ‘행동가’라고 불렀다. 사회적 문제가 있을 땐 주저하지 않고 목소리를 냈다.

지난해 6월 백인 우월주의를 없애야 한다며 흑인 인권운동(Black Lives Matter)에 불을 붙였다. 법은 모두에게 평등해야 한다는 의미로 ‘저스티스 리믹스드(Justice Remix’d)’ 아이스크림도 출시했다. 매카시 취임 당시 업계 1~2위를 다투던 벤앤제리스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미국 1위 아이스크림 기업이 됐다. 시장 점유율은 25%다. 지난해 매출은 8억6310만달러로 2위 그룹인 하겐다즈, 블루벨과 1억달러 정도 차이가 난다.

매카시는 올해 컬럼비아 경영대학원에서 수여하는 보트위닉 기업윤리상을 받았다. 벤앤제리스를 경영하면서 사회 변화를 이끌었다는 이유에서다. 매카시는 “기업 윤리가 ‘범법을 피하는 것’이던 시대는 지났다”며 “기업들이 윤리적 행동을 이끌고 정의를 실천해야 한다”고 했다. 기업 스스로 가치 있는 일을 찾아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움직임이 늘 좋은 결과를 낸 것은 아니다. ‘팬덤’이 커질수록 ‘안티’도 늘었다. 아이스크림 회사가 아니라 정치 기업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내년부터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제품을 팔지 않겠다고 선언하자 반유대주의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논란이 커지자 코언과 그린필드는 직접 뉴욕타임스에 기고를 올리며 진화에 나섰다. “이스라엘 지지자인 자신들의 결정은 반유대주의가 아니라 인권과 평화를 지키기 위한 행동”이라고 했다.

“사회 이슈에 목소리를 내면 소비자가 떠날까봐 두렵지 않으냐는 질문을 받습니다. 제 대답은 완전히 반대입니다.”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매카시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백인 우월주의를 종식시키고 기후변화를 줄이기 위한 행동을 하는 게 더 많은 아이스크림을 팔기 위한 것은 아니다”고 했다. 매카시는 “무엇을 옹호하는지 사람들이 알게 되면 가치에 따라 일관되게 행동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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